솔직히 이 본문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냥 넘겼습니다. 영웅담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다시 앉아 천천히 읽어보니, 이 이야기가 제 안에 있는 부끄러운 민낯을 정확히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우물물을 길어왔을 때, 다윗이 그 물을 땅에 부어버린 그 장면에서 저는 한참을 멈췄습니다.헌신 — 목숨보다 무거운 충성역대상 11장을 읽으면서 제가 처음 눈여겨본 건 숫자였습니다. 야소브암이 창 하나로 한 전투에서 300명을 쓰러뜨렸다는 기록, 엘르아살이 혼자 보리밭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쳐들어오는 블레셋 군을 막아냈다는 이야기. 여기서 성경이 쓰는 단어는 단순한 용감함이 아닙니다. 이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선언입니다. 10절을 보면, 용사들이 다윗을 ..
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몸은 건강했습니다. SNS엔 매일 운동 인증 사진이 올라왔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죠.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마음이 가장 힘든 사람일수록 몸을 더 혹독하게 굴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날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역대상 10장 말씀과 겹쳐지면서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묻지 않은 왕의 최후역대상 10장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길보아 산에 쓰러진 사울은 자신의 무기 든 자에게 칼로 자신을 찌르라 명했고, 거절당하자 스스로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도 같은 날 목숨을 잃었습니다.성경은 그 죽음의 이유를 매우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역대상 9장에서 문지기로 택함을 받은 인원은 정확히 212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고작 문지기 숫자를 왜 기록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 숫자 안에 담긴 의미가 제 신앙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문지기라는 직분, 과연 고상한 일인가군 시절 저는 전투경찰 중대에서 초소 근무를 섰습니다. 건물 입구 작은 초소 앞, 쇠사슬로 차량을 통제하는 그 자리에 30분 이상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면 버틸 만했을 텐데, 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거기에 중대장 차량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긴장감까지 더해지면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역대상 9장의 문지기들도 그 고단함을 알았을 겁니다...
솔직히 저는 야베스의 기도를 처음 접했을 때 그냥 넘겼습니다. "지역을 넓혀 주십시오"라는 말이 너무 세속적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이 짧은 기도 안에 담긴 맥락이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고통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사람이 그 이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사실, 그 하나의 장면이 제가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편견을 조용히 무너뜨렸습니다.야베스의 기도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제가 오랫동안 야베스의 기도에 가졌던 편견은 꽤 뿌리 깊은 것이었습니다. 소위 기복신앙(祈福信仰)이라는 틀로 이 기도를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복신앙이란 신앙의 핵심을 현세적 복, 즉 건강·재물·성공 같은 물질적 이익을 얻는 데 두는 종교 행태를 가리킵니다. 저는 야베스의 기도가 딱 그..
시편 119편 158절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보며 슬퍼한다고 고백합니다. 영문 번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감정을 '혐오스러움(loathing)'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다가 멈췄습니다. 그 슬픔의 대상이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선(僞善)이라는 단어가 나를 가리킬 때신앙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위선(僞善)이란, 겉으로는 선하고 경건한 척하지만 실제 내면과 행동은 전혀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종교적 언어로는 외식(外飾)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외식이란 마치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듯,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신앙을 '연출'하는 태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편 119편을 묵상하다가, 제 기도가 얼마나 저 자신만을 향해 있었는지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대출금 걱정, 진로 고민, 가족 건강 —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과 저의 관계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가지고 부르짖은 적이, 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도제목이 말해주는 것: 나는 무엇을 위해 부르짖는가시편 119편을 펼치면, 저자가 부르짖는 이유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재난이 닥쳤고, 원수가 가까이 왔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시편 기자가 간구하는 핵심은 한 가지로 수렴됩니다. 바로 "주님의 율례(律例)를 지키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례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삶의 법도, 즉 어떻게 살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