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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몸은 건강했습니다. SNS엔 매일 운동 인증 사진이 올라왔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죠.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마음이 가장 힘든 사람일수록 몸을 더 혹독하게 굴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날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역대상 10장 말씀과 겹쳐지면서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묻지 않은 왕의 최후
역대상 10장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길보아 산에 쓰러진 사울은 자신의 무기 든 자에게 칼로 자신을 찌르라 명했고, 거절당하자 스스로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도 같은 날 목숨을 잃었습니다.
성경은 그 죽음의 이유를 매우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출처: 바이블노트, 역대상 10장).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 그리고 신접한 자(神接한 者)를 찾아간 것입니다. 여기서 신접한 자란 영매(靈媒), 즉 죽은 자의 혼이나 귀신을 불러 미래를 점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의 무속인이나 점쟁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행위를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범죄'로 규정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신명기적 역사관(申命記的 歷史觀)이란 이스라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 불순종하면 재앙"이라는 원리로 해석하는 시각입니다. 역대상의 저자는 바로 이 관점에서 사울의 일생을 정리하며,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간 이유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9장에 기록된 사울의 족보는 베냐민 지파 기브온에 뿌리를 둔 가문입니다. 넬이 기스를 낳고, 기스가 사울을 낳았으며, 사울에서 에스바알, 므립바알로 이어지는 계보는 7대에 걸쳐 상세히 추적됩니다. 그토록 긴 가계(家系)가 10장 단 몇 절 만에 비극적 종지부를 찍습니다.
- 사울의 죽음: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 세 아들도 함께 사망
- 직접적 원인: 신접한 자를 찾아 미래를 물음 — 여호와께 묻지 않음
- 결과: 왕권이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어감 (역대상 10:14)
- 사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시신을 거두어 장사하고 7일간 금식
점쟁이를 찾아간 그녀,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 지인에게서 들은 말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던 시기에, 점을 치는 곳을 찾아갔다는 겁니다. 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흔들릴 때, 저도 하나님보다 눈앞의 사람을 더 먼저 붙잡았습니다. 어머니가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게 실제로 무언가를 바꾼다는 걸 선뜻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성인이 된 뒤 부모님이 별거하시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처음엔 어떤 전문가에게 전화를 돌릴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막혀 있던 것들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을 때 조금씩 열리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게 劇的인 기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마음 안에서 방향이 생겼고, 그 방향을 따라 움직였을 때 길이 보였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중에 읽을 것'이 아니라 '지금 붙잡아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그 선택이 쉬워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의 본능은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것을 찾습니다. 사울이 신접한 자를 찾은 것, 제 지인이 점집을 찾은 것, 그리고 제가 위기마다 주님보다 전화기를 먼저 드는 것, 이 셋은 본질적으로 같은 반응입니다.
믿음(信仰)이란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분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단순한 감정적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점집보다 느리고, 전문가의 조언보다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역대상은 그 선택의 장기적 결과를 왕의 삶과 죽음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은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묻는다'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darash)'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깊이 구하고 탐문하는 행위를 뜻합니다(출처: YouVersion 성경, 역대상 10장).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구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사울에게는 그 태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때 그 태도가 없었고, 지금도 급할 땐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매일 말씀을 읽고 손으로 적습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말씀을 쓰고 정리하는 과정이 제 조급함과 불안을 조금씩 다스려 준다는 걸, 제가 직접 써봤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울이 신접한 자를 찾아간 것이 왜 그렇게 큰 죄였나요?
A. 당시 이스라엘 율법은 신접한 자를 찾는 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었습니다(레위기 19:31, 신명기 18:10-12). 사울 자신도 왕으로 재위 중에 이 행위를 금지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알면서도 절박함 앞에서 그것을 저버린 것이었고, 성경은 이를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완전한 포기로 해석합니다.
Q. 힘들 때 점이나 무속을 찾는 심리는 왜 생기는 건가요?
A. 제 경험상 그 심리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당장 확실한 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싶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느리게 느껴집니다. 인간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성경은 그 반응이 장기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를 사울의 일생을 통해 보여줍니다.
Q. 역대상 9장의 족보는 왜 이렇게 길게 나오는 건가요?
A. 역대상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족보는 단순한 계보 나열이 아니라, 각 지파와 가문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신학적 도구입니다. 9장의 사울 가문 족보가 10장의 사울 죽음과 바로 이어지는 구조 자체가, 불순종의 결과가 한 가문 전체에 미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Q. 매일 말씀을 읽는 게 실제로 삶에 변화를 줍니까?
A. 제가 직접 해봤는데, 劇的인 변화보다는 조용한 방향 전환에 가깝습니다. 급할 때 바로 주님께 먼저 나아가는 빈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말씀을 통해 들었던 원칙들이 결정 앞에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꾸준함이 핵심이고, 저도 아직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결론
사울이 하나님 대신 신접한 자를 택한 것은,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빠른 답을 원했고, 보이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기울기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 제 지인도 그랬습니다.
다만 역대상은 그 선택의 끝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록을 읽으며, 지금 제 삶에서 작은 것부터 바꿔보려 합니다. 급할수록 말씀을 먼저 펴고, 모르는 것은 기도로 먼저 물어보는 것.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는 실천입니다. 그것이 쌓이면, 위기 앞에서 제 삶의 방식이 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참고: https://www.biblenote.kr/read.html?translation=H1_GAE&book=OLD13&chapter=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