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시편 119편 158절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보며 슬퍼한다고 고백합니다. 영문 번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감정을 '혐오스러움(loathing)'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다가 멈췄습니다. 그 슬픔의 대상이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선(僞善)이라는 단어가 나를 가리킬 때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위선(僞善)이란, 겉으로는 선하고 경건한 척하지만 실제 내면과 행동은 전혀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종교적 언어로는 외식(外飾)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외식이란 마치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듯,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신앙을 '연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Pharisees)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리새파란 율법의 외적 준수에는 철저했지만 그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저버린 종교 지도자 집단을 가리킵니다.
제가 제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상당히 불편합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꽤 능숙하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말씀을 거울삼아 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파를 향해 반복적으로 "화 있을진저(Woe to you)"라고 외치셨을 때, 저는 그 경고가 저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솔직히 착각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율례(律例)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이 멀어진다고 선언합니다. 율례란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명령하신 규정들, 즉 삶의 세부 지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큰 원칙만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인 태도와 선택에까지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제가 그 말씀을 듣고 금세 잊어버리는 패턴을 반복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거짓된 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158절 원문의 감정 표현은 꽤 강렬합니다. '슬퍼하였다'는 말 뒤에는 그냥 안타까움이 아니라, 말씀을 저버린 삶에 대한 뼈아픈 자각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구절 앞에서 느낀 것도 그랬습니다.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 표현이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앙의 성실함(faithfulness)이란, 보이는 곳에서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같은 기준을 붙잡는 일관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성실함이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한결같이 충실하게 머무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저는 이 기준 앞에서 제 자신이 얼마나 자주 자리를 이탈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말씀을 타인 판단의 도구로만 쓰고 자기 성찰에는 적용하지 않는 태도
-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경건을 '연출'하는 외식
- 말씀을 듣고도 곧 잊어버리는, 반복되는 불성실의 패턴
- 율례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구원에서 멀어지는 위험
말씀 순종이 가져오는 평안, 저는 맛본 적이 있을까요
162절은 꽤 구체적인 비유를 씁니다. 큰 전리품을 얻은 사람처럼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표현입니다. 예상치 못한 자산이 생기거나, 오래 준비한 일이 결실을 맺었을 때의 그 기쁨과 뿌듯함,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씀을 대하는 감정의 온도가 그 정도로 높다는 것을요.
165절은 더 직접적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great peace)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큰 평안이란 단순히 감정적 안정이 아니라 히브리어 '샬롬(Shalom)'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샬롬이란 삶의 전 영역에서 온전함과 충만함이 회복된 상태를 뜻하며, 결핍이나 분열이 없는 완전한 조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그 말씀을 멀리한 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출처: 개역개정 성경 시편 119편).
제 경험상, 말씀을 가까이 붙들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어떤 외부 환경과 관계없이 내부에서 조용한 안정감이 유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멀리하고 사람 눈치만 보며 지냈던 시간들은, 아무리 상황이 좋아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차이가 저한테는 꽤 선명합니다.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말씀을 구하는 열심을 멈추지 않으려면
153절은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잊지 않는다는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핍박자들과 대적이 많은 상황에서도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161~162절)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평안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신뢰처럼 들립니다.
저는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지속의 뿌리가 말씀을 구하는 열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묵상을 통해 다시 붙잡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고 구하는 삶의 태도가 쌓일 때 비로소 그 평안이 실존적으로 경험된다고 시편 기자는 증언합니다(출처: BibleGateway, Psalm 119 NIV).
163절은 거짓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거짓된 자로서 살지 않으려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하루 일곱 번 찬양한다는 164절의 고백처럼,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하루 일곱 번이란 숫자의 의미보다 '끊임없이, 습관적으로'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즉 특별한 날이나 기분 좋을 때만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 안에 말씀이 자리 잡는 것을 말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편 119편 158절에서 '슬퍼하였다'는 표현이 영어 번역과 다른 이유가 있나요?
A. 히브리어 원문의 감정 표현은 상당히 강렬한데, 영문 번역(NIV 등)은 이를 'loathing(혐오)'으로 옮깁니다.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은 이를 다소 완화해 '슬퍼하였다'로 표현했습니다. 어떤 번역이 더 맞느냐보다, 말씀을 저버린 삶이 그만큼 무겁게 다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Q. 바리새파와 외식하는 자를 현대 신앙인과 연결하는 게 너무 가혹한 비교 아닌가요?
A. 가혹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 저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리새파를 비판하신 핵심은 율법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간격이었습니다. 그 간격은 시대를 막론하고 신앙인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으로 쓰는 게 가장 유익한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Q.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A. 시편 기자가 말하는 '하루 일곱 번 찬양'처럼, 거창한 방법보다 일상의 리듬 안에 말씀이 스며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식은, 억지로 분량을 채우려는 읽기보다 한 구절이라도 삶의 어느 장면과 연결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작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핵심이지 않을까요?
Q. 샬롬(Shalom)이 말씀 순종과 직접 연결되는 근거가 있나요?
A. 시편 119편 165절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명시합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단순한 평온함이 아니라 삶 전반의 온전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경 신학적으로 이 평안은 율법을 두려움으로 지키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결론
이번 묵상에서 저는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섰습니다. 저는 지금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도구로 대하고 있는가. 158절의 거짓된 자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편 기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말씀을 구하는 열심을 멈추지 않을 때, 그 말씀이 주는 샬롬을 제 삶에서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그 모든 행위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로 다가옵니다.
참고: http://www.holybible.or.kr/B_GAE/cgi/bibleftxt.php?VR=GAE&VL=19&CN=119&CV=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