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찬양을 인도하는 자리에 서면, 선곡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매번 느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 회중이 잘 아는 곡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보다 감성적인 분위기에 더 기대고 있었습니다. 역대상 25장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비로소 찾은 것 같았습니다. 신령한 노래란 단순히 감동적인 노래가 아니라, 구별되고 훈련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적 사역이었습니다.

구별된 자만이 맡을 수 있었던 자리
일반적으로 찬양은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역대상 25장을 직접 읽어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은 군대 지휘관들과 함께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 가운데서 따로 구별하여 섬기게 했습니다. '구별'이라는 단어가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성별(聖別), 즉 거룩하게 따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아무나 불러다 세운 것이 아니라, 특정 가문의 자손으로서 소명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삽의 아들들은 아삽의 지휘 아래, 여두둔의 아들들은 여두둔의 지휘 아래, 헤만의 아들들은 헤만의 지휘 아래 각각 섬겼습니다. 영어 성경(NIV)에서는 이 사역을 'prophesying'(예언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예언적 사역이란 미래를 점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회중 앞에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찬양이 곧 말씀 선포였던 셈입니다.
제가 예배에서 찬송을 고를 때 이 부분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었는지 솔직히 돌아보게 됩니다. 구별된 자로 섰느냐는 질문 앞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훈련 없이는 섬길 수 없었다
본문 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 이 한 문장이 제게는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배워 익숙한 자'라는 표현이 눈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수금(kinnor)은 고대 이스라엘의 현악기로, 오늘날의 하프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비파(nebel)는 더 크고 낮은 음역의 현악기였으며, 제금(metziltayim)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타악기입니다. 이 세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288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머리 수가 아니라 훈련을 완수한 사람들의 명단이었습니다.
악기 훈련만이 아니었습니다. 헤만에 대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先見者)"라고 표현합니다. 선견자(先見者, Seer)란 하나님의 뜻을 앞서 보고 전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찬양 사역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자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악보를 외우는 훈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 수금(kinnor): 하프 형태의 현악기, 서정적인 음색
- 비파(nebel): 더 크고 깊은 음역의 현악기
- 제금(metziltayim): 청동 타악기, 강조와 리듬을 담당
- 288명: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해진 자들의 수
찬양이 선포여야 한다는 것, 제가 놓쳤던 부분
찬양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회중이 눈물을 흘리거나 손을 들거나, 적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곡이 좋은 찬양이라는 막연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반성이었는데, 그 기준이 어느 틈에 '하나님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이동해 있었습니다.
역대상 25장에서 신령한 노래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예언하다'는 동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처: 대한성서공회 성경 역대상 25장에 따르면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들은 단순히 음악을 연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노래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찬양의 가사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가 핵심 기준이 됩니다.
제가 찬양을 인도하던 때를 돌아보면, 곡을 고를 때의 기준이 주로 "이 곡이 내 마음에 와닿는가", "회중이 잘 아는 곡인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가사인가를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특송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곡은 많은데 정작 말씀을 중심으로 선별된 곡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제 기준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서를 정한 288명, 그 안에 담긴 원칙
역대상 25장의 후반부는 상당히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첫째부터 스물 넷째까지, 각 조의 이름과 열두 명의 인원이 반복해서 나열됩니다. 처음엔 단순한 명단 같았는데, 8절에서 멈추게 됩니다.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 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제비 뽑기(抽籤)란 사람의 판단이나 선호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경험 많은 스승이 먼저, 아직 배우는 제자가 나중이 아니었습니다. 실력이나 연차가 순서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은 찬양 사역이 개인의 능력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24개 조에 각 12명씩, 총 288명이 일 년 52주를 순환하며 성전을 섬겼습니다. 출처: Biblica NIV 역대상 25장에서도 이 구조를 24개 조의 예언적 음악 사역으로 설명합니다.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예배 섬김의 구조를 다윗이 직접 설계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본문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정도의 구체성과 체계성이 오늘날 찬양팀 운영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령한 노래가 일반 찬양과 다른 점이 뭔가요?
A. 단순히 감동적인 곡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성경(NIV)에서는 이 단어를 'prophesying', 즉 예언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사와 음악으로 회중 앞에 선포하는 것이 신령한 노래의 본질입니다. 일반적으로 찬양은 감성 표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말씀 선포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선곡 기준 자체가 달라집니다.
Q. 아삽, 헤만, 여두둔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A. 세 사람 모두 다윗 시대의 레위인 찬양 사역자입니다. 아삽과 여두둔은 각각 자녀를 지휘하여 신령한 노래를 드렸고,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견자(Seer)란 하나님의 뜻을 앞서 받아 전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찬양 사역의 수장이 동시에 말씀의 사람이었다는 점이 이 본문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Q.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한 이유가 뭔가요?
A. 스승과 제자, 경험 많은 자와 새로 시작한 자 사이에 인위적인 우열을 두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찬양 사역이 개인의 실력이나 연차로 운영되면 결국 사람의 인정을 위한 자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로, 사역의 중심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임을 구조적으로 못 박은 방식이었습니다.
Q. 오늘날 찬양팀도 이런 원칙을 적용할 수 있나요?
A. 악기나 편성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구별과 훈련, 말씀 중심 선곡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제가 직접 찬양을 인도해보니, 선곡 기준을 감성에서 말씀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예배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윗이 세운 이 구조는 오늘날 예배 공동체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원리입니다.
결론
역대상 25장을 읽으면서, 찬양을 대하는 제 태도에 뭔가 빠져 있었다는 걸 정리하게 됐습니다. 구별된 자로 서는 것, 말씀을 선포하는 가사를 중심으로 고르는 것, 사람의 서열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섬기는 것. 이 세 가지가 신령한 노래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찬양을 고를 기회가 생기면, 먼저 가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를 물어보려 합니다. 제 자녀들에게도 찬양이 세상의 노래와 다른 이유를 그 기준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신령한 노래는 여전히 구별되고 훈련된 자들을 통해 이 시대에도 울려 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