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 시편 119편 37절
시편 119편 33절부터 48절을 읽으면서 오늘은 한 가지가 특별히 마음에 들어왔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간절하게 사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한다.
깨닫고 싶어 한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작은 소리로 되뇌면서 묵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간구한다.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깨닫게 해주십시오.”
“내가 그 길로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오늘 내가 배워야 할 말씀에 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기를 구하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의 율례를 자신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깨닫게 해달라고 한다.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이끌어 달라고 간구한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닫고,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하고,
결국 그것을 삶에서 선택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르쳐 달라”고 반복해서 요청한다.
나 역시 성경을 읽을 때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다.
“하나님, 이 말씀의 뜻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바꾸어 주십시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않게 하소서
오늘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은 37절이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여기서 ‘허탄한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어떤 물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가치가 없는 것, 쓸모없는 것,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이것이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스마트폰을 열면 수많은 영상이 나온다.
짧고 재미있는 영상들이 계속 이어진다.
하나를 보고 나면 또 다른 영상이 나오고,
그것을 보고 나면 또 다른 것이 나온다.
처음에는 잠깐 보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상당한 시간이 지나가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게 남은 것은 별로 없다.
재미는 있었지만 배운 것도 많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준 것도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것들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향해야 할 시간과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본다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가 매일 보는 영상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내가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그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영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경제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목적과 태도다.
배우기 위해 보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보는 것인가?
오늘은 이 부분을 더욱 조심해야겠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보고,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나의 삶에 유익한 것을 선택해서 보아야겠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
“주님, 제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탐욕도 말씀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시편 기자는 탐욕에서 자신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한다.
탐욕은 단순히 돈을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오려는 이기적인 욕망도 탐욕의 한 모습일 수 있다.
돈, 성공, 명예, 편안함,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경제적인 자유를 좋아한다.
많은 돈을 벌고 싶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자유와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같은 것이 아니다.
돈이 주는 자유와 말씀 안에서 누리는 자유
세상은 흔히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한다.
돈이 충분하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좋아한다.
가능하다면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돈이 나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돈이 나에게 시간을 줄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못한다.
돈이 편안한 삶을 줄 수는 있어도,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참된 자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길을 기쁨으로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내 마음을 굳게 하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결단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묵상하며 그 길을 걸어가겠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지,
어떤 일을 할지,
어디에 돈을 쓸지,
어떤 말을 할지,
누구의 생각을 따라갈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나 자신을 향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기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때로 자유가 아니라 욕망에 끌려가는 것이 될 수 있다.
말씀은 그때 나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48절까지 묵상하면서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그 말씀을 지키겠다고 결단한다.
나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정직하지 못하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면서 나는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세상의 가치와 즐거움만 좇는다면 그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말씀을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말씀을 알고도 외면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갔을 때 다시 돌아오며,
오늘도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삶은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단순한 지식이나 종교적인 말이 아니라 내 삶에서 경험한 진실한 고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 나의 대답이 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에게 대답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자신의 논리와 감정으로 반박하고 싶어진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어.”
하지만 시편 기자가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말솜씨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구원과 사랑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
내가 실수하고 넘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일으키셨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가장 강력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나 자신의 언어로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돈일까?
경제적인 자유일까?
편안함일까?
내가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삶일까?
물론 이런 것들도 삶에서 중요하다.
나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
가능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
나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주시는 분,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씀을 사랑하는 자리로
내 안에는 끊임없이 다른 것을 바라보게 하는 욕망이 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편안하게 살고 싶고,
재미있는 것을 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 자체가 항상 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계속해서 말씀으로 돌아간다.
가르쳐 달라고 기도한다.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말씀을 지키겠다고 결단한다.
말씀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헛된 것에서 자신의 눈을 돌려 달라고 기도한다.
나도 그렇게 기도해야겠다.
내가 보는 것을 잘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잘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추구하는 것을 잘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돈을 벌고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상의 재미와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해주십시오.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실제 삶에서 살아내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랑했던 시편 기자의 마음을 저에게도 허락해 주십시오.
말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깨달은 것을 삶에서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제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무심코 소비하는 영상과 쓸데없는 것들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제가 정말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을 분별하여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돈과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더라도
그것이 제 삶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자유보다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따르는 자유를 더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구원과 변함없는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고,
누군가 저를 비난하고 조롱할 때에도
제 감정이나 사람의 말을 의지하지 않고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담대하게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과 다르게 살아가는 위선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일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힘쓰게 해주십시오.
주님,
제 삶의 가장 중요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상의 어떤 것도
저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음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