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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한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총도 없고 창도 없으니 싸울 일이 없다고요. 그런데 역대상 11장을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용사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기록하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걸렸습니다. 그 이름들은 단순한 명단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드는 거울이었습니다.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의 무게
역대상 11장 20절부터 47절까지는 다윗의 군사 중에서 뛰어난 용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나옵니다. 아비새, 브나야, 아사헬, 엘하난, 우리아… 수십 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그냥 명단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열전(列傳)'입니다. 열전이란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차례로 기록한 전기 형식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편찬하신 열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셨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물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내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고 있을까?" 전쟁터에서 창을 드는 것만이 헌신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이름은 화려한 전공(戰功)만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싸운 자들의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성경 본문은 출처: 바이블노트 역대상 11장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본문을 여러 번역본과 함께 비교하며 읽었는데,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행적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다시금 놀랐습니다.
- 아비새 — 창을 겨누어 300명을 죽이고 둘째 삼십 명 중 대장이 됨
- 브나야 — 눈 오는 날 함정에 내려가 사자를 죽이고 거인을 그의 창으로 죽임
- 수십 명의 용사들 — 각자의 이름과 출신지, 행적이 개별적으로 기록됨
첫째에 못 미쳐도 기억된 싸움
브나야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한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 미끄러운 함정 속으로 혼자 내려가 사자를 죽였습니다. 키가 5규빗, 약 2m 25cm에 달하는 애굽의 거인과 싸울 때는 손에 막대기 하나만 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거인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것으로 죽였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등에 땀이 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그 삼십 명 중의 존귀하나 첫째 삼십 명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 문장이 참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1등이 아니라는 평가. 저도 살면서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어딘가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브나야를 시위대장(侍衛隊長)으로 세웠습니다. 시위대장이란 왕의 신변을 가장 가까이서 보호하는 최고 경호 책임자를 의미합니다. 1등이 아니어도, 왕이 가장 신뢰하는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우리가 정해놓은 순위표와 다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기도, 성경 읽기, 예배 같은 영적 습관을 꾸준히 유지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가꾸는 실천을 뜻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한 번에 폭발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눈 오는 날 함정에 내려가는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에도 성경 한 장을 펴고 기도 자리에 앉는 것이 영적 훈련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
지금 시대에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가장 자주 지는 싸움은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성경을 펴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먼저 집어 드는 것,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눕는 것.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영적 나태(Spiritual Sloth)입니다. 영적 나태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내면의 게으름을 뜻합니다. 몸이 게으른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몸의 게으름은 눈에 보이지만, 영적 나태는 스스로도 잘 알아채지 못한 채 조금씩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세계관 전쟁(Worldview War)입니다. 세계관 전쟁이란 하나님의 진리와 그것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대의 흐름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려는 목소리들이 점점 더 크고 세련되게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이 싸움에서 단련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각자의 전장에서 용맹하게 싸운 것처럼, 저도 지금 제게 주어진 싸움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읽고 배우는 것, 거짓이 진리처럼 포장되어 들어올 때 그것을 말씀으로 분별하는 것, 육신의 게으름에 끌려가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매일 치르는 전투입니다. 제 경우엔 이 싸움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 무기력해졌습니다.
참고로 영적 싸움의 본질에 대해서는 출처: YouVersion 성경 — 디모데후서 2장에서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잘 드러납니다. 이 싸움은 선택이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역대상 11장의 용사 명단은 왜 이렇게 길고 상세한가요?
A.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신다는 신학적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름과 출신지, 행적을 하나하나 기록하신 것은 그 싸움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명단이 길다는 것은 기억할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Q. 브나야는 왜 첫째 삼십 명에 못 들었는데도 시위대장이 됐나요?
A. 서열과 신뢰는 다른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브나야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가장 가까운 자리인 시위대장직으로 인정했습니다. 순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오늘날 우리의 영적 싸움이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건가요?
A. 성경 읽기와 기도를 미루는 영적 나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는 것, 건강과 삶의 규율을 무너뜨리는 육신의 게으름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총과 창이 없어도 싸움의 자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싸움인지 알고 나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Q. 하나님은 정말 우리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A. 역대상 11장의 명단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처럼 읽힙니다. 화려한 1등이 아니어도, 이름 없이 싸운 수십 명의 용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헌신하는 삶이 하나님께 보이지 않는 법이 없다고 믿습니다.
결론
30명 안에 드는가, 3인의 지휘관 안에 드는가를 놓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고, 제가 할 일은 지금 제 자리에서 싸움을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열심히 읽고, 기도 자리를 지키고, 거짓이 진리처럼 포장되어 들어올 때 그것을 분별하며 맞서는 것. 이것이 제가 오늘도 치르는 싸움입니다.
역대상 11장을 읽고 나서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전장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싸워야 할 자리를 알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자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www.biblenote.kr/read.html?translation=H1_GAE&book=OLD13&chapter=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