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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다윗처럼 어릴 때부터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은퇴를 앞두고 6개월째 일을 쉬면서, 역대상 14장을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히람이 아무 요청도 없이 찾아와 다윗의 궁전을 지어줬다는 그 장면에서, '나는 평생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얼마나 경험해봤을까'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나님 신뢰 — 내가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오시는 분
역대상 14장 1~2절에는 제가 꽤 오래 붙잡아 두게 된 장면이 나옵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신과 백향목, 석수와 목수를 보내 궁전을 지어줬다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요청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히람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다윗이 깨달은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절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이 깨달음(히브리어로 '야다', 단순한 앎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인식)은 히람의 행동을 보면서 왔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먼저 계산하고 나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을 목격하면서 쌓이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하나님 신뢰는 제가 완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기대하지도 않은 통로로 도움이 올 때 — 그때 '아, 이분이 살아계시는구나'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히람은 다윗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저도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히람의 자발적 행동 — 다윗이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찾아온 도움
- 다윗의 깨달음 — 예상 밖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는 것
- 신뢰의 출발점 — 완전한 믿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
순종 — 두 번의 전투, 두 번의 다른 답
역대상 14장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블레셋과의 전투 장면입니다. 다윗이 첫 번째 블레셋의 침공을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올라가야 합니까?" 하나님은 "올라가라"라고 답하셨고, 다윗은 바알브라심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답이 달랐습니다. "마주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하라." 심지어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나가라"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 이 '신성한 신호(divine signal)'란,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신다는 표시를 기다린 뒤에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은, 저는 두 번 다 같은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 제 방식대로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에 주님께 '잘 됩니까?'라고 여쭤보는 순서로 살아왔습니다. 순종(히브리어 '샤마', 듣고 따름)이란 단어는 단순히 복종이 아니라 먼저 듣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다윗은 두 번 다 먼저 여쭤봤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지금 6개월째 일을 쉬면서, 대출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것이 죄인지, 아니면 필요한 현실적 행동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미친 척 행동한 것이 불신앙이 아니었듯,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신앙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순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먼저 여쭤보고, 그다음에 움직이는 것. 그게 다윗이 보여준 순종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온라인 성경, 역대상 14장).
기도 — 다윗의 시편이 보여주는 솔직한 기도
다윗의 기도는 모범 답안처럼 깔끔하지 않습니다. 시편 22편은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로 시작합니다. 시편 6편에서는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라고 씁니다. 다윗의 기도는 감추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탄식 기도(Lament Prayer)'란, 하나님께 아픔과 혼돈을 그대로 들고나가는 기도 형식을 말합니다. 완성된 신앙고백이 아니라, 과정 중의 솔직한 부르짖음입니다.
제 경우엔, 기도를 할 때 뭔가 정리되고 믿음스러운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진심보다 형식처럼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다윗의 시편을 더 깊이 읽을수록, 정돈된 기도보다 솔직한 기도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 저는 매달 갚아야 할 빚과 일을 쉬는 상황 앞에서, "주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말이 가장 솔직한 기도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앞에서 하나님께 물은 것처럼, 저도 이 경제적 막막함 앞에서 먼저 여쭤보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다윗의 탄식 기도 패턴을 연구한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시편의 탄식이 "신앙의 무너짐이 아니라 신앙의 성숙"이라고 말합니다(참고: Logos Bible Software — Walter Brueggemann, The Message of the Psalms).
하나님의 일하심 — 내 상식 밖에서 오는 응답
역대상 14장 17절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다윗이 자기 명성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퍼뜨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신적 섭리(Divine Providence)'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직접 개입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이 구절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따로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 능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습니다. 공부도, 스펙도, 확실한 길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듭니다. 그런데 다윗의 명성은 다윗이 설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전투에 나갔고, 순종하며 움직였습니다. 다만 그 결과를 자기가 통제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지금 제 아들과 딸, 교회 형제들, 저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결과가 제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오기를 바랍니다. 히람처럼 누군가가 예상하지 못한 통로로 찾아오는 일이 제 삶에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돈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반드시 반대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무엇이 먼저인지, 누가 주인인지가 다윗에게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그 명확함을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윗이 하나님께 두 번 물어본 이유가 뭔가요? 한 번 물어봤으면 됐을 것 같은데요.
A. 역대상 14장을 보면 두 번째 블레셋 침공 때 하나님의 전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첫 번째는 정면 돌파, 두 번째는 우회 기습이었습니다. 같은 적, 같은 장소인데 답이 달랐습니다. 이게 시사하는 건 꽤 명확합니다. 지난번에 됐다고 이번에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번 여쭤보는 것이 다윗의 방식이었고, 그것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Q.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대출을 받거나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게 불신앙인가요?
A.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불신앙의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행동 자체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행동이 먼저 여쭤보고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먼저 달려드는 것인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순서의 문제라고 봅니다.
Q. 다윗의 시편처럼 솔직하게 기도해도 괜찮을까요? 불평처럼 들릴까봐 망설여집니다.
A. 시편에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부터 "언제까지입니까"까지 다양한 탄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들을 성경에 남겨두셨습니다. 정제된 언어보다 솔직한 마음이 기도의 문을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성된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솔직한 혼란을 들고 나가는 것이 탄식 기도의 핵심입니다.
Q. 히람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처럼 저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A. 히람의 행동은 다윗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이시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그런 순간은 대부분 제가 통제를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 찾아왔습니다. 물론 항상 劇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방식으로, 뜻밖의 사람을 통해 오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인 것 같습니다.
결론
제가 역대상 14장을 다시 읽으면서 한 가지를 정리하게 됩니다. 다윗의 신앙이 위대했던 이유는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매번 먼저 여쭤봤기 때문입니다. 히람의 자발적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챘고, 블레셋 앞에서 두 번 다 먼저 물었고, 탄식 기도로 솔직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지금 일을 쉬고 있고, 경제적으로 막막하고,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조금 정리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을 닮는 첫걸음은 먼저 여쭤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완성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고 솔직하게 주님 앞에 서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제 자녀들의 삶에 히람 같은 뜻밖의 은혜가 찾아오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