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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왜 믿냐"고 물으면 잠깐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논리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늘 장면들입니다. 서울 천왕동 골목, 담 안쪽 사택, 주일 아침 찬송 소리. 저는 그 기억들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그 기억들 속에 이미 하나님이 먼저 와 계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다윗의 기도가 새롭게 읽힌 것도 바로 그 지점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 다윗이 들은 것, 제가 들은 것
역대상 17장을 읽다 보면 다윗이 왜 그렇게 말을 잃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Nathan)를 통해 다윗에게 언약을 선포하셨는데, 그 내용은 단순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견고하게 서리라는, 역사를 꿰뚫는 메시아적 약속이었습니다. 메시아적 약속이란 단지 한 사람의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전체가 한 혈통을 통해 성취된다는 선언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라며 하나님 앞에 앉았습니다(출처: 바이블노트 역대상 17장).
저도 비슷한 감정을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왕도 아니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먼저 천왕동교회—이후 새빛교회로 이름이 바뀐 작은 교회—에 다니셨고, 저는 교회 담 안 사택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성경과 찬송가를 듣고 컸습니다. 당시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 작은 집, 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정을 먼저 찾아오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윗이 감격한 것은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초라함을 알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존귀한 자처럼 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이게 좀 다르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그냥 부모님 덕분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신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그 두 분을 먼저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신학적으로 이것을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이라고 부릅니다. 선행 은총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셔서 믿음의 가능성을 여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신학 책에서 처음 배웠지만, 실제로 제 삶을 돌아보니 그게 이미 천왕동 골목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습니다.
- 다윗의 감격: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다는 사실
- 나단 선지자를 통한 언약: 다윗 왕조의 영속성과 메시아적 성취를 내포한 선언
- 선행 은총의 실제: 사람이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그 가정, 그 골목으로 오심
- 제 경험: 아무도 모르는 천왕동 사택에서 시작된 신앙이 지금 인천에서도 이어지고 있음
감사 고백과 부활의 소망 — 이 약속을 어디서 또 들을 수 있습니까
다윗은 기도 후반부에서 방향을 바꿉니다. 감격에서 담력으로, 놀라움에서 간구로 넘어갑니다. 그는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담력(膽力)이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약속을 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기도할 권리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만이 그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많은 말들을 들었습니다. 자기 계발서, 철학, 심리학, 각종 종교의 언어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릴 때 철없이 듣던 성경 말씀이 나이가 들수록 더 정밀하게, 더 사실처럼 다가온다는 것이 말입니다. 2,000년 전 유대라는 작은 땅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Historical Event)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로, 신화나 비유와 구별되는 실증 가능한 사건을 의미합니다(출처: Got Questions — 부활의 역사성).
"그런 이야기는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종교의 텍스트들을 읽어봤는데, 부활(Resurrection)이라는 개념, 즉 죽었다가 영원히 살아나는 몸의 회복을 역사 안에서 선언하고, 그것을 보증으로 미래 신자들의 부활까지 약속하는 경전은 성경뿐이었습니다. 불멸이나 윤회나 해탈은 있어도, 죽은 몸이 영원히 살아나는 부활을 약속하고 그 첫 증거를 제시한 책은 성경이 유일합니다.
지금 저는 인천에서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작은 교회에 다닙니다. 돈이 많지 않고, 세상이 알아주는 자리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삶이 초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제 가족에게 약속된 부활과 영생이 분명히 있고, 그것이 성취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약속을 듣고 기도할 담력을 얻었다고 했는데, 저도 똑같이 그 말씀을 붙들고 오늘을 삽니다. 수십억 명이 지구 위에 살고 있지만, 이 사실을 듣고 믿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 기적이라는 감각, 이게 제가 오늘도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윗의 기도가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A. 다윗의 기도는 자기 공로를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는 "나는 누구이기에"라며 자신의 초라함을 먼저 인정한 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근거로 삼아 간구했습니다. 이런 기도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구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부모님이 믿으면 자녀도 자동으로 신앙을 갖는 건가요?
A.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 저도 처음엔 그냥 환경의 영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환경은 계기일 뿐이고, 실제로 말씀과 부딪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은 개인마다 고유하게 일어납니다. 부모님의 신앙이 문을 열어준 것은 맞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건 결국 본인의 몫이었습니다.
Q. 기독교의 부활이 다른 종교의 불멸 개념과 다른 점이 뭔가요?
A. 일반적으로 불멸이나 윤회는 영혼이 죽지 않거나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는 개념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이와 달리 죽은 몸 자체가 새롭게 살아나는 신체적 회복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증거로 제시합니다. 제가 여러 경전들을 직접 읽어본 결과, 이 방식으로 미래 부활을 역사적 사건과 연결해 보증하는 텍스트는 성경뿐이었습니다.
Q.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신앙이 의미 있을 수 있나요?
A. 다윗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은 왕의 궁궐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보십니다. 저도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 평범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성경을 배우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충분한 의미라고 느끼고, 사실 이 감각이 생긴 것 자체가 제게는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결론
다윗의 고백이 저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가 왕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자신을 잘 알면서도, 약속하신 하나님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가 누구인지 압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가정, 서울 변두리 골목에서 시작된 신앙. 그런데 그 시작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수십억 명 중 이 사실을 듣고 믿는 사람이 된 것,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보증으로 한 영생의 약속이 저와 제 가족에게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 제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이고,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윗이 그랬듯이, 약속을 들은 사람은 그 약속을 근거로 기도할 담력을 얻습니다. 그 담력 위에 오늘도 하루를 놓습니다.
참고: https://www.biblenote.kr/read.html?translation=H1_GAE&book=OLD13&chapter=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