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신앙이 좋은 사람이 정치나 국가 문제에는 무관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역대상 12장을 다시 펼쳐 들었을 때,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운 것은 기도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장한 군사 수십만 명의 몸을 건 헌신이 있었습니다.

헌신자의 수가 나라의 미래다 — 역대상 12장이 보여주는 팩트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면 알아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역대상 12장을 보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세워지던 그 순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무장한 군사들이 구체적인 숫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에서 6,800명, 에브라임에서 28,800명, 스불론에서 50,000명, 요단 강 동편 지파들에서만 120,000명. 이것은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닙니다. 이 숫자는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떠나 몸을 내놓은 사람들의 목록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가 다윗에게 돌아오도록 공을 세웠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출처: 바이블노트 역대상 12장).
여기서 눈에 띄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잇사갈 지파의 우두머리 200명을 가리켜 성경은 "때를 잘 분간할 줄 알고, 이스라엘이 하여야 할 바를 아는 사람들"(32절)이라고 묘사합니다. 시대적 분별력(時代的 分別力)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능력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읽고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확신입니다.
스불론 출신 군사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33절). 쉽게 말해 한쪽 발은 다윗 편에, 한쪽 발은 구 체제에 걸쳐 놓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전심 헌신(全心 獻身), 즉 몸과 뜻을 온전히 한 방향으로 정렬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솔직히 고백해야 할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헌신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고, 이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 국방력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습니다. 분명한 국가관(國家觀), 즉 나라가 어떤 원칙과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갖추는 일을 미뤄왔습니다. 그 후회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국방력(國防力)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국방력이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군사적·전략적 역량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발달해도, 이 역량이 약해지면 쌓아온 모든 것이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역대상의 이 본문은 그 사실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볼 때 그 경고가 결코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 유다 6,800명 / 에브라임 28,800명 / 스불론 50,000명 / 동편 지파 합산 120,000명 — 수십만이 자발적으로 헤브론으로 집결했습니다.
- 잇사갈 지파 200명은 숫자가 아닌 시대적 분별력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얼마나 왔느냐보다 왜 왔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 스불론 군사들은 "두 마음 없이" 나왔습니다 — 전심 헌신이 나라의 기초를 만든다는 원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 사울의 동족 베냐민도 3,000명이 합류했습니다 —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대의 흐름을 읽은 결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국가관이 다음세대를 결정한다 — 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
역대상 12장 40절은 좀 의외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수십만 군사들이 헤브론에 모였을 때, 근처 지파들이 밀가루 빵과 무화과 빵, 건포도, 포도주, 소와 양을 낙타와 나귀에 실어 보내왔습니다. 전쟁 준비가 아니라 잔치였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스라엘에 기쁨이 넘쳤다"라고 기록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췄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기쁨을 나눈 사람들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잇사갈의 시대 분별력을 가르친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고, 스불론의 전심 헌신을 아들에게 보여준 아버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家庭)이 나라의 군사를 만들어내는 기초 훈련소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선명하게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는 신앙 교육과 정치·국가 문제를 완전히 다른 범주로 나눠서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는 들려줬지만, 이 나라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지도자를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하는지, 왜 국방이 신앙과 무관하지 않은지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아버지가 국가관(國家觀)에 무지하면, 자녀는 시대적 분별력을 배울 기회를 잃습니다. 여기서 국가관이란 나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신앙적 기준을 말합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집에서, 밥상 앞에서,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신앙 교육(信仰 敎育)이라는 말도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여기서 신앙 교육이란 단순히 성경 암송이나 예배 참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훈련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라고 명령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이 훈련에는 신앙뿐 아니라 역사관, 시대 인식, 현실 참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부딪혀 보니, 자녀의 꿈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 것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기억입니다. 다윗의 군사들이 잊지 못한 것이 전투 기술이 아니라 헤브론에서의 그 사흘짜리 잔치였을 것처럼, 자녀들은 아버지의 정답보다 아버지의 태도를 기억합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이라도 고쳐가려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앙인이 정치나 국방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
A. 신앙과 정치는 별개라고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만, 역대상 12장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수십만 명의 무장한 헌신자가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기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현실 참여의 회피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기 쉽습니다. 시대적 분별력을 갖추고 나라의 방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신앙인의 직무 유기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Q. 잇사갈 지파의 "때를 분별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A. 일반적으로 시대 분별은 예언적 능력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역대상 문맥에서는 "지금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쉽게 말해,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지, 왜 지금 움직여야 하는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성경 공부와 현실 감각이 함께 훈련될 때 길러진다고 봅니다.
Q.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국가관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A. 제가 직접 시도해보니 거창한 강의보다 일상 대화가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왜 이게 문제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역사적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짚어주는 것이 시작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의 "훈련과 훈계"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Q. 교회도 젊은 헌신자가 없으면 무너지나요?
A. 역대상 12장의 구조를 보면, 노련한 지휘관과 젊고 용맹한 군사가 함께 움직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험상 중년 이상의 신자들만 남은 공동체는 현재는 유지되지만 5~10년 후를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젊은 세대가 전심 헌신으로 참여하도록 훈련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 지금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로 보입니다.
결론
역대상 12장을 읽고 제 안에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저는 지금 어느 지파 사람인가. 두 마음 없이 나선 스불론인가, 아직 사울 가문에 발을 걸쳐둔 베냐민인가.
지금이라도 나라의 지도자에 대한 관심, 공부, 비판적 참여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시대적 분별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것들을 자녀들에게 흘려보내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전심 헌신(全心 獻身)은 거창한 무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밥상 앞에서 나누는 솔직한 대화 한 마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참고: https://www.biblenote.kr/read.html?translation=H2_SAENEW&book=OLD13&chapter=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