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시편 119편 89-104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지만, 말씀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규칙이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그를 살린 힘이었고, 위기의 순간 그가 붙들었던 기준이었으며,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한 지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날마다 그것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가장 자주 이야기하고 있는가?
1.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서 있습니다.”
— 시편 119편 89절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경제 상황도 변하고, 내가 가진 것의 가치도 변합니다. 오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내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90절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모든 세대를 지나 계속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세우셨고 그것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역시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흔들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약해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약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2. 고난 가운데 나를 살린 말씀
92절은 이번 본문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말씀입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았으면, 나는 나의 고난으로 망하였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고난을 가볍게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망하지 않았던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습니다.
그는 고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스럽지 않은 척할 수도 없었습니다. 슬픔이 사라지지도 않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갑자기 없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기보다 먼저 현실을 바라보고, 사람을 원망하고, 상황을 탓했던 것은 아닌가?
왜 나는 고난을 겪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참된 기쁨과 위로가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내가 아주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하나님의 배려와 보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고난을 없애 주시는 것만 하나님의 보호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 가운데서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3. 말씀은 내 생명을 지키는 힘이 된다
93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삶이 흔들릴 때 나를 붙들어 주는 기준이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돌아오게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잊지 않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내 영혼이 살기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4절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고백합니다.
“나를 구해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놀라운 고백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법도를 찾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찾아야 할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나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보다 내게 유익한 것을 먼저 찾습니다.
돈을 찾고, 안정된 삶을 찾고, 더 많은 자산을 찾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찾습니다.
그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문제가 됩니다.
4. 위기의 순간에도 말씀을 생각할 수 있을까?
95절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멸망시키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보다 하나님의 증거를 깊이 생각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내 주변에 나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어려운 일이 눈앞에 닥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를까?
아니면 문제와 걱정, 손해와 두려움만 생각하게 될까?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평소에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했는가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위기의 순간에만 말씀을 붙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날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날의 말씀이 위기의 날에 나를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나는 무엇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가?
97절은 이번 본문에서 나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내가 당신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날마다 그것을 읊조립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관심 있는 것을 찾아보고, 중요한 것에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자주 이야기하고 무엇을 자주 생각하는지 돌아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을 많이 말하고 있는가?
내 경우에는 돈과 자산,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산을 늘릴 수 있을까?
어떤 투자가 좋은가?
어떤 경제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까?
물론 경제와 자산을 관리하는 것은 삶에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더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돈을 생각하는 시간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가?
돈의 변화에는 민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말씀으로 나를 살리고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오히려 돈과 자산을 더 많이 생각하며 그것에 내 미래를 걸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의지해야 할 분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돈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6. 말씀을 사랑하면 지혜가 달라진다
98-100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되었고, 선생님보다 명철하게 되었으며, 노인들보다 지혜롭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아졌다는 뜻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별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기준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101절부터 102절에서는 그 말씀이 실제 삶을 변화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시편 기자는 악한 길로 가지 않으려고 주의했고,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것입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달다
103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입에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때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내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시편 기자는 말씀을 달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말씀이 결국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약을 먹을 때 맛이 쓰더라도 병을 낫게 한다면 그것을 귀하게 여기듯이, 하나님의 말씀 역시 때로는 나에게 불편하고 아프게 다가오지만 결국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달콤함은 단순히 듣기 좋은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얻는 기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이 달콤함을 삶 속에서 계속 경험하고 싶습니다.
8. 말씀은 내가 잘못된 길을 미워하게 만든다
마지막 104절에서 시편 기자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통해 명철함을 얻었기 때문에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게 되면 잘못된 길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왜 잘못되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나는 때때로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길인지 몰랐습니다.
내 생각이 맞다고 믿었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나를 세워 놓으면 내가 얼마나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말씀은 나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바로잡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 때문에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삶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던지는 질문
시편 119편 89-104절을 묵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마음에 남겨 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가?
고난 가운데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두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실제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돈과 성공과 안정된 삶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많이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미래를 더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고, 이제라도 말씀을 통해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마무리 묵상
시편 119편 89-104절은 결국 말씀의 영원성과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 말씀은 고난 가운데 나를 살리고, 위기의 순간 나를 붙들며, 삶의 방향을 가르치고, 잘못된 길을 분별하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사랑할수록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질문 하나를 마음에 품으려고 합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 생각과 말과 시간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면 돈을 이야기할 것이고, 세상의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묵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경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고, 말씀 때문에 잘못된 길을 미워하며, 말씀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도
주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원망하기보다 말씀 안에서 위로를 찾게 하시고, 두려운 순간에도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제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소서.
돈과 자산과 세상의 안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게 하소서.
제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이 제게 꿀보다 달고, 고난 가운데 생명이 되며, 평범한 날에도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제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