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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5장 9-25절을 읽으며 생각한 정직과 책임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흔히 큰 결단이나 특별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에스겔 45장 9절부터 25절까지 읽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폭력과 탈취를 그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곧바로 정확한 저울과 공정한 도량형을 사용하라고 명령하신다.
성전과 제사에 관한 말씀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저울과 되의 크기까지 말씀하시는 것이 조금 의외로 느껴진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성전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물건을 사고팔고 다른 사람과 거래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멈춰야 했던 것은 지도자의 욕심이었다
9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폭력과 탈취를 그치라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지도자는 자신의 힘과 지위를 이용해 백성에게서 빼앗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한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위치 자체가 아니라 그 위치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권한이 커질수록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신다.
이어서 등장하는 정직한 저울과 도량형에 관한 규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울과 되의 크기도 정확해야 했다
10절부터 12절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규례가 나온다.
에바와 밧을 정직하게 사용하고, 저울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에바는 주로 곡식과 같은 고체를 재는 부피 단위이고, 밧은 액체를 재는 단위였다. 본문에서는 이들의 기준을 분명하게 정하고, 세겔의 무게까지 제시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거래의 기준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었다.
조금 작은 되를 사용하거나 조금 가벼운 저울을 사용하면 한 번의 거래에서는 작은 차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다른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기준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공정한 기준을 사용하라고 하셨다.
신앙은 저울 앞에서도 드러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신앙과 일상의 영역을 너무 쉽게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면서도, 내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는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에바나 밧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여전히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면서 내 이익을 늘리지 말라는 것.
거래할 때도 정직해야 하고, 돈을 계산할 때도 정직해야 하며, 내가 맡은 일을 처리할 때도 공정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직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선택에서 확인된다.

절기의 예물에도 질서가 있었다
13절부터는 백성이 드려야 할 예물에 대한 규례가 이어지고, 이후에는 군주가 절기를 위해 준비해야 할 제물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유월절과 초막절 같은 절기에 군주는 백성을 위해 정해진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여기에서도 지도자의 역할이 다시 드러난다.
지도자는 백성에게서 무엇인가를 더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준비하고 섬기는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난다.
앞에서는 백성에게서 빼앗지 말라고 하셨고, 이어서는 절기에 필요한 것을 군주가 준비하도록 하셨다.
지도자의 권한은 자기 이익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책임과 연결되어 있었다.
정직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 시험받는다
정직한 저울에 관한 말씀을 읽으면서 예전의 직장생활도 떠올랐다.
숫자와 실적을 다루다 보면 아주 작은 차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있었다.
원칙대로 하면 조금 불리해질 수도 있다.
내가 조금 더 챙길 수도 있고,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다.
그때 정직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실제 선택이 된다.
정직한 선택이 항상 나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직이 어렵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기준을 조금씩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 세웠던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에스겔의 말씀은 그런 나에게 아주 단순한 기준을 다시 보여준다.
저울은 정확해야 한다.
나에게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기준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은퇴 후의 삶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기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의 내 삶도 생각해 보았다.
직장에서의 책임이 줄어들고, 예전처럼 많은 사람과 숫자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직이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물건을 사고팔 때, 돈을 계산할 때, 다른 사람과 약속할 때, 내가 가진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서 기준을 바꾸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사용하는가'
에스겔 45장에서 지도자에게 요구된 것은 더 많은 권한이나 더 많은 소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진 권한을 바르게 사용하고, 백성을 위해 책임을 다하며, 공정한 기준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으며 나에게도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보다,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돈이든 경험이든 시간이든 마찬가지다.
나에게 있는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 누군가에게 불편을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의 묵상
에스겔 45장의 말씀은 저울 하나를 통해 신앙의 아주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래에서 사용하는 저울까지도 정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직은 우리의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다.
나는 오늘부터 거창한 결심을 하기보다 작은 것에서 기준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직하고, 내게 유리한 쪽으로 기준을 바꾸고 싶을 때 한 번 더 멈추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저울의 눈금 하나는 아주 작아 보인다.
하지만 그 작은 눈금 하나에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담길 수 있다.
오늘 생각해 볼 질문
- 나는 나에게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
-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는가?
- 내가 가진 돈과 시간과 경험을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씀
레위기 19장 35-36절 — 길이와 무게와 부피를 속이지 말고 공정한 저울과 되를 사용하라는 말씀
잠언 11장 1절 — 속이는 저울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며 공정한 추를 기뻐하신다는 말씀
아모스 8장 4-6절 — 작은 되와 큰 세겔을 사용해 가난한 사람을 속이던 당시의 모습을 책망하는 말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묵상
신앙의 정직함은 큰 결심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저울의 눈금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