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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73~79절 묵상
시편 119편 73~79절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은 자신을 만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이었고, 고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통로였습니다. 또한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나를 가르치신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손수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가르쳐 주실 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조언을 듣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지혜는 단순한 정보만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지으신 분의 말씀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에 소망을 두는 사람
74절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나 역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에 특별한 기쁨과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75절은 조금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성실하심으로 자신을 고난 가운데 두셨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은 언제나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고난을 단순히 버림받은 증거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붙들고 계심을 바라봅니다.
고난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다루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나의 위로가 되고 있는가
76절과 77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에게 임하여 다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무엇으로 위로받고 있는가?
돈이 조금 더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생활이 편리해지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사람들의 인정이나 세상의 좋은 것들이 나의 마음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더 좋은 것, 더 편리한 것,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그것만으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실패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의 위로로 삼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할 때 기쁨을 발견한다
77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도 말씀에서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말씀을 사모할 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 수 있을까
78절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교만한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비슷한 마음이 생깁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거나, 그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 자체를 숨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가져가면서도 주의 법도를 읊조리겠다고 고백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79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증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신앙은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갈망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고, 말씀 앞에서 함께 고민하고, 어려울 때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사람들.
나 역시 오래전부터 그런 교제를 갈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찾기 전에 먼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소망을 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의 묵상
시편 119편 73~79절은 결국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있는가?
세상의 편리함보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나의 위로로 삼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오늘도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갑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쳐 주시기를 구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에 소망을 두는 사람의 삶이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